삶이란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길을 걷는 것과 같다.
인생 곳곳에 장애물을 숨겨두고 우리를 넘어뜨린다.
어쨌건 걸어가야 하는 길인데 그 길이 두려워 한 자리에 욺크리고 앉아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간혹 넘어지고, 꼬꾸라지고, 부러진다해도 그 상처
가 아문자리는 더욱 단단해지는 법이다.]-->
어린아이에게 자전거를 가르칠 때 중심을 잘 잡는 것보다 “잘 넘어지는 법”
을 먼저 가르치지 않던가. 우리 삶의 과정도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잘 넘어
질 줄 알아야 크게 다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뛸수 있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
시 일어나는 순간, 끝이 아니라 출발점인 것이다. 다시 일어서는 용기, 그 용
기는 근육과 같아서 많이 써본 사람이 더 잘 발휘될 수 있다.
우리의 삶에서 ‘행복과 불행’ ‘긍정과 부정’ ‘낙관과 비관’을 가르는 절대적
기준은 없다. 다만 각자 어떤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을 뿐
이다. 깊은 산, 높은 산을 오르다보면 길이 갈라지는 길목에서 방향감을 잃고
머뭇거리는 순간 누군가가 나무가지에 ‘리본’을 달아놓은 작은 배려로 길을
찾아 가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누구나 성공 할
수는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프레임’을 잘 못 설정했기 때
문이다. 습관적인 ‘질주’ ‘만용’에 익숙해지면 속도에 매몰 되기 십상이다.
하버드대 스티븐슨 교수는 말 한다 “경주마는 달리기 위해 생각을 멈추지만,
야생마는 생각하기 위해 달리기를 멈춘다.”
살면서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다가 온다. 예기치 않게 찾
아 오는 ‘행운’이라는 기회의 얼굴로 다가 올 수도 있지만, 자기 의지와 관계
없이 ‘불행’이라는 극적인 이름으로 몰아닥칠 수도 있다. 화불단행(禍不單行)
이라 하지 않던가, 불행은 혼자오지 않고 겹쳐 온다는 말이다.
모든 것을 빼앗긴 채 빈손으로 맞닥뜨릴 수도 있다. 포기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갈등으로 자신을 괴롭힌다. 이럴 때 다른 누군가는 어떤 선택을 했는지 묻고 싶다.
나뭇가지에 ‘리본’을 달아주는 작은 배려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