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은 스텝을 잘 밟아야 멋지게 보인다. 지르박, 브루스, 탱고, 왈츠, 차차차, 고고 등
스텝이 다 다르다. 스텝이 안 맞으면 상대방 발을 밟는 실수를 범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도 생로병사에 맞는 스텝을 밟지 못하면 자신뿐 아니라 주변을 힘들 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생로병사를 예외 없이 누구도 피할
수 없고 온전하게 겪어내야 한다. 그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공평한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스물다섯까지는 계속 성장세포가 열려있지만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500년 전에 쓰여 진 동의보감(‘東醫寶鑑)에 인간은 50세를
넘어가면서 몸이 쇠약해져가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요즘
나이로 치면 65세 이후가 될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술 마시고, 과식하고, 분노조절 못
하고, 성욕을 마구쓰기 때문이라고 하니 지금 우리시대에 적용해 봐도 하나도 어긋나
는 게 없다. 그래서 ‘제 명에 못 산다’는 말이 생긴 것이다. 조선의 왕들만 봐도 평균 수
명이 46세이었는데 자기 관리를 잘 조절해서 양생(養生)을 한 21대왕 영조는 83세를
살기도 했지만, 폭군이었던 연산군은 왕으로서 스텝을 잘 못 밟아 31세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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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하고 돈 벌어 쓰다가 60이 돼서 환갑(정년)을 맞이하면 죽게 되는 것이 순리
라고 생각했는데 자본주의 발전하면서 인류를 굶주림과 전염병으로부터 구제했고, 심
지어 겨울에는 춥지 않게, 여름에는 덥지 않게 만들며 어느 사이에 100세, 120세 인생
을 살게 되었다. 하지만 100세 인생 앞에서 축복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어떤 준
비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이같이 자본주의는 예전에 비해 물질적 풍요
를 누리게 했지만 우주질서의 대원칙은 부유하면서, 정신적 가치도 풍요롭기는불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물질적 풍요는 정신을 빈곤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돈도
잘 벌고, 연애도 잘 하고, 오래 살겠다고 우기지만 그것은 어림없는 탐욕이다.
물질과 정신은 선택이 아니라 균형을 잡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재산은 중산
층정도면 되는 것이고 정신은 상류층에 두는 것이 적절한 것이다. 백수 청년이 좋은 음식
많이 먹고, 일 안하고, 집에서 TV 나보고, 컴퓨터 개임에만 하고 앉아 있다면 물질적 풍요
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100세 시대를 암울하지 않게 살아가려면 100세 시
대에 알맞은 생로병사의 스텝을 춘하추동에 맞춰 밟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끝 철인 겨울에 봄 스텝을 밟고 있다면 웃기는 것이다. 웃기는 스텝을 밟고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렇게 철들지 않은 상태로 보낸 삶은 산 것이 아니다.오래 산다는
것은 내가 그 시간을 어떻게 통과했느냐가 핵심이지 사는 시간만 늘어난 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생각해보자 만일 100세를 산다고 치면 지금 60대인데 남은 40년을 뭘 하
면서 살아야지? 술 마시고, 몸에 좋다는 보양식 먹어가면서 성욕이나 채울라치면 이건 동
물이다.
이렇게 철들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면 마음이 약해져서 죽는 게 너무 무서워지는 지옥인
것이다. 그러니 지옥은 내가 만든 것 아닌가. 이렇게 살면 늙어가는 게 두렵고, 죽는 게
너무 두려워지는 법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지혜를 연마하고 인생의 이치를 터득
해 충만한 삶의 스텝을 밟아가야 늙어가는 게 두렵지 않고 죽음 앞에 태연해 질 수 있는
것이다.
공자는 73세, 부처는 80세까지, 예수는 33세 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는지 깨우칠
필요가 있다. 2000년 전에 세상을 떠난 분들이지만 그들의 향기가 세상 곳곳에 퍼져
남아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물러나
서환경운동가로 활동한 게 대통령이었을 때보다 유명해졌다. 그분이 92세인데 몸에
암 종양이 다 번졌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이제 하느님께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며 마음
이 너무 편안해졌다고 한다. 이게 바로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스텝을 제대로
다 밟은 노인의 지혜인 것이다. 아무 아쉬움도 남지 않은 충만한 삶이다.
동의보감의 생체리듬에 따르면 남자는 64세, 여자는 49세에 자연스런 폐경기라고 한다.
지금이야 늘어난 게 사실이지만, 이때가 되면 여성은 남성적인 기운이 나고, 남성은 여성
적인 기운이 나와서 음기와 양기가 섞여 세팅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남성과 여성
사이에 이제는 사랑이 아니라 우정의 시간이 시작된다는 말이다. 친구사이라는 우정을
동양에서는 도반(道伴)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배움이 일어나면 스승이면서 친구요, 친구
이면서 스승인 사우(師友)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 맺을 수 있는 아름다운 관계가 되는
것이다. 스승인데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낼 수 있고, 친구인데 그를 스승으로 존중할 수
있는 관계, 인간이 태어나서 맺을 수 있는 최고의 관계 아닌가. 부부도 이런 관계가 되지
않으면 황혼에 헤어질 일만 남는다. 같이 못산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필요에 의해서
만 살아내야 하는 적과의 동침인 것이다.
부부가 예전에는 뜨거운 열정과 성적 에너지로 살았고, 자식을 키울 때는 공동의 과업을
충실이 지켜왔지만, 자식 다 크고 나서 떠나면 둘이서 소 닭 보듯 데면데면 해진다.
그래서 애완견에 마음이 간다. 이렇게 점점 대화가 안 되니 쪽지 대화가 시작된다. 이혼
서류에 도장 찍으라는 말까지도 쪽지로 남긴다고 한다.
음양이 적당히 섞인 인간의 시간이 왔다면 거기에 맞는 스텝을 밟아가야 성숙해지는데
60을 넘긴 할머니가 손녀딸과 미모를 겨루면서 44사이즈를 입겠다고 우기면 보는 사람
들이 미치고 돌아버린다. 아무리 돈도 많고 문명의 혜택이 풍요로워도 이처럼 생체리듬
에 엇박이 생긴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우리 모두가 헤매고 있다고 봐도 틀림없다. 이
제는 물질과 정신의 균형점을 찾아야 할 타이밍인데 ‘불금’을 쫓아서 잠을 자지 않고, 음
주가무,게임, 쇼핑, 드라마 다시보기, 이런 걸 하느라 시간을 허비한다면 삶의 균형이 깨
진다. 늙고, 병들고, 노쇠해지면 사실 많은 돈이 별 필요하지 않다. 쇼핑도 댕기지 않고,
멋지게 보이고 싶은 욕구도 사라지고, 음식도 과식하면 병만 생긴다. 동서고금을 통해
건강을 위해 소식이 대원칙이다.
우리가 ‘청춘이 멋지고 좋다.’고 하는 이유는 많은 가능성을 실험하고 시행착오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많은 실패를 경험해도 된다는 것이다. 만일 하는 일마다
술술 잘 풀려나간다면 그 사이에 얻은 게 없지 않은가. 현대인들이 실패를 ‘트라우마’라
고만 말하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동양에서는 인간이 진실한 행복을 누리려면 81난
(80번을넘는어려움)을 겪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고대 중국의 장편소설 서유기에 손
오공과 저팔계가 108요괴(백번을넘는흔들림)를 만나고 81난을 겪는 게 미션이다. 인간
은 그래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에 완전한 노예
가 되는 것이다. 81난이나 108요괴가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실패들이 나를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을 덜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실패가 자랑스러운 것이다. 나는 이런 것도 경험해
본 사람이야 라고 하는 스토리가 있어야 하는데, 취직도 잘되고, 연애도 술술 풀리고, 중
년에는 중산층에 무사히 편입한 분들은 지금 다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자기 스스로 생
성한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겪은 실패와 실수와 고생을 자랑스럽게 생
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걸 본인이 겪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식에게 1난,
2난만 닥쳐도, 한 두 번의 요괴만 만나도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뼈 빠지게 번 돈을 자식
에게 올인 하는 우를 범하며 한탄하고 살아가는 부모들이 주변에 부지기수다. 자식은
부모를 위해 절대로 올인 하지 않는다.
인간의 운명은 자연에서 절대로 못 벗어난다. 그래서 인간 본연의 생체리듬을 배워야 한다.
인생의 춘하추동 스텝을 어떻게 밟아가야 할지를 깨우쳐가야 하는데, 남자는 육십대 중반에,
여자는 40대 후반에 폐경기가 빨리 온다고 억울해하며 호르몬 주사, 태반주사, 마늘 주사를
맞고, 남자는 양기에 좋다는 갖가지 음식을 쫓다가 그래도 안 되니 비아그라를 먹는데 해야
할 영역이 이것 말고는 달리 남은 게 없다고 여기기 때문 아닌가. 진정한 노후 대책은 돈이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몇 십억을 벌어놓았는데 어느 날 치매에 걸리면 그걸 뜯어 먹
겠다고 자식들이 나타나서 아귀다툼을 해댄다. 결국 평생 서빠지게 일해서 모은 돈이 자식
들에게 폭탄이 된다는 것을 왜 알려고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자식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가져간 돈이 잘 쓰여 지질 않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내 돈을 잘 쓰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도 정신적 풍요로움으로 살아가는 ‘비움’의 훈련을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
공자가 그랬고, 예수가 그랬으며, 소크라테스가 그랬고, 황희정승이 그랬다. 누가 이들을
불행하게 살았다고 말 하건가. 산해진미를 먹는다고 언제까지 행복할 까? 연애를 얼마만
큼해야 행복할까? 인간은 이런 걸로는 언제까지나 만족을 못하게 되어 있다. 나이 들어
가면서 꼰대에서 꽃대로 살고 싶다면, 날마다 배우고 깨우침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