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가면 스님들이 신발 벗어놓는 마루에 “조고각하(照顧脚下)”라고 써 놓은 것을 보게 된다.
‘자기 발밑을 살펴보라’는 것은 자기 존재의 본질을 늘 스스로 살펴보고 받아드리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는 것이다. 신발 벗어놓는 마루에 자신의 신발을 똑바로 벗어 놓는 사소하고 작은 행
위가 그 사람의 전체를 나타내는 성품이다. ‘인류최초의 우주인은 누구일까? 바로 옛 소련의
유리 가가린Ga-garin)이다. 1961년 4월 12일, 가가린은 보스토크 1호를 타고 89분간 우주를
비행하며 세계 최초의 우주비행사로 역사에 기록됐다. 가가린은 다른 19명의 지원자와 경합을
벌인 끝에 세계 최초로 우주를 비행할 자격을 얻었다. 19명의 지원자 중에 가가린이 선발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역사는 디테일이 결정했다. 우주 비행사가 최종 결정되기 1주일 전, 20명의 우주인 지원자는
우주비행선 보스토크 1호에 직접 타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때 다른 지원자들은 당연한
듯 신발을 신은 채로 우주선에 올랐다. 하지만 가가린은 다른 지원자들과는 달리 비행선 앞에
서 신발을 벗고 양말만 신은 채 우주선에 올랐다. 이런 가가린의 행동이 비행선 설계자의 눈에
띈 것이다. 설계자는 이 27세의 젊은 청년이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우주선을 아끼는 모습
을 보고 인류 최초로 우주를 비행하는 신성한 사명을 가가린에게 부여했다고 한다. 가가린
이 가진 디테일의 힘이 그를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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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은 섬세함이자 치밀함인 것이다. 이 디테일은 왜 중요한가. 사실 모든 위대함은 작은
것들에 대한 충실함에서 기인한다. 산술적으로는 ‘100-1=99’가 정답이겠지만, 사회생활에
서는 ‘100-1=는’ 0 혹은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흔히 회자되는 ‘1%의 실수가 100%의 실
패를 낳을 수 있다’ 또는 ‘100+1=101이 정답이지만 200도 300도 될 수 있다는 계산은 디테
일의 중요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한 끗이 비즈니스에 미치는 결과는 엄청난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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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성복은 시(詩)는 대단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식당에서 나올 때 뒷사람 구두를 돌려놓아
주는 거라고 한다. 시(詩)는 틈새 만들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결론은 이웃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이든 자연이든 주변의 모든 환경에 대해서 낮아져야 하고 겸손해야
하고 작아져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민족시인 윤동주처럼 ‘잎 세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는
감수성이 살아난다. ‘부처는 하심함소(下心含笑)’하라고 했다. 항상 마음을 낮추고 입가에 미
소를 띠우라는 말이다. 절에 스님도, 교회 목사님들도 자만과 방심으로 발밑 살피기를 게을리
하다 추락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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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인지사 번역파비(窮人之事 飜亦破鼻)라 했다. 안 되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고,
잘 되는 사람은 넘어져도 눈앞에 산삼뿌리가 보인다. 이런 걸 두고 머피와 샐리의 법칙이라 하
는데 어떻게 하면 하는 일마다 잘 되고 손대는 일마다 술술 풀리게 되는 사람이 될까?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은 ‘감사하고 기뻐하라’ 그것만이 탐욕과 유혹을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성경(데살전5:16)에서도 항상 기뻐하라,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라. 고 한다. ‘있는 자는 더 주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겠다.는 것이 하늘나라 법칙이다. 있는 자는 있는 것에 감사할 줄 알고,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더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없는 자는, 없다고 원망하고
불평만을 일삼으니 있는 것조차 빼앗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하늘나라 경제법칙이다. 영국의 철
학자 버트란트 러셀도 ‘진정으로 행복을 원한다면 탐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가진 것에 감사하라.’
고 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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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최고의 석학이었던 바울은 예수를 만나 뒤에 사도가 되었다.
(빌립보서4장)‘바울은 내가 궁핍함으로 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이든 나는 자족하기를 배
웠노라. 그래서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안다.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
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비결을 예수에게서 배웠다. 고 말 했다. 그런데 나는 재수 없는 놈,뒤로
넘어져도 코가 개지는 놈이라고 자책하면서 일이 잘 안 풀리고 점점 꼬여만 간다고 원망과 불평
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복불쌍행(福不雙行, 禍不單行)’이라했다. 복은 쌍 지어서 오지 않고,
화는 홀로오지 않는다. 불행은 엎친데, 덮치는 법이다.
천만다행(千萬多幸)이네! 그렇게 생각해라.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할 줄 알았던 러셀이나 바울은 인류사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생각했던 것에 비하면 다소 적지만, 기뻐하고 감사하는 당신에게 복이 겹쳐올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