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리코너 장인수 선생 노량진 대성학원 입시 전문학원에서 강사로 퇴직후 1만여권의 책을읽고 주옥같은 내용 을 선별하여 진서리 코너에 게제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루지 못한꿈 자식에게 읽게 하십시요
  • 다산 정약용의 초당을 찾아서
  • 2017-02-07
진서리


   다산초당(茶山草堂)을 찾아서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특검이나 헌재를 보면서 실로 답답함을 금치 못해 친구와


둘이서 전남 강진에 있는 다산 정약용의 초당을 찾았다. 조선의 22대 왕 개혁군주


정조는 정약용이 있었기에 정조일 수 있었고, 정약용은 정조가 있었기에 정약용일


수 있었다. 사실 정약용을 이야기 할 때 정조를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은 18년 국


정운영에 의기투합하여 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그러나 정조가 붕어한 뒤 정약용은 18이라는 긴 세월을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


면서도 자존심을 잃지 않고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 500여권의 책을 썼다.


사람들은 곤궁한 처지에 빠지면 스스로 자존심을 버린다. 비굴하게 변할 수 있다.


아니 불법적인 줄 알면서도 눈을 감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산의 집안은 매우 청렴


하여 지금의 남양주에 거주할 때도 약간의 토지에서 소출되는 곡식으로 여러 형제


가 함께 나누며 근근이 살았다. 더구나 정조가 죽은 뒤에는 참으로 비참한 생활이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은 다산이 유배에서 풀려나 중앙 관직에 복귀하여 가


족들의 생계를 꾸려주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런 상황은 오지 않고 집안은 너무도


어려워지기만 했다.


이런 다산에게 중앙 조정에서는 유혹이 그치지 않았다.


그를 유배지에 보낸 세력들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잘 못했으니 나를 당신들 편에


서게 해달라고만, 하면 유배지에서 풀려날 뿐만 아니라 중앙 관직에 복귀시켜주고


특혜를 주겠다.’는 유혹이 줄을 대고 있었다.


힘겹고 고통스런 생활에 지쳐가던 다산의 가족들 역시 흔들렸다. 마침내 다산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 가족들을 위해 한 번만 고개를 숙이면 어떻겠느


냐는 내용이다. 이 편지를 쓰는 아들 역시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이 없었겠는가.


편지를 받은 다산은 아들에게 답신을 보낸다.


천하에 두 가지 기준이 있다.


그 하나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고,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의 기준이다.


옳은 것을 지켜 이익을 얻으면 참으로 좋겠지만, 나쁜 것을 좇아 이익을 얻는 것은


절대로 받아드려서는 안 된다.고 쓴다.




다산은 자신을 유배 보낸 세력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그들과 한 통속이 되어서 살아


간다는 것은 나쁜 것을 좇아 이익을 얻는 것이고, 마침내 이익도 얻지 못하고 해만


있는 것이다. 이는 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의로움이 무엇이고 자신을 지


키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썼다.


고려 말에 충신이던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와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의 하여가


(何如歌)가 떠오른다. 이방원이 고려 충신 정몽주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지은 시를 何如歌라 하는데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 느냐


만수산(지금의 송악산)드렁 칙이 얽혀진들 어떠 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정몽주가 답신으로 보낸 시를 丹心歌라 한다.


이 몸이 죽어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 있으랴


 


또 중국 전국시대 오나라 계찰의 감명 깊은 글이 생각난다.


곧지만 오만하지 않고, 굽히면서도 비굴하지 않는다.”


바로 이게 다산의 생각과 일치한다. 초당 1경은 다산이 직접 쓴 정석(丁石)인데,


자신의 성씨 자와 돌자는 다산의 성품일 그대로 나타내주고 있다. 다산은


편지 말미에 아무리 어려워도 비루하게 살지는 말자. 명예롭게 살다가 빛나게


죽자라고 쓴다.


어려운 처지에 있어도 양심과 영혼을 팔아서야 되겠는가.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큰돈으로 유혹을 하는 일이 비일 비재한다.


지금 세상이 그렇게 변해버렸다.


영혼을 잃은 정치인과 관료들이 거대 자본과 손을 잡고 백성들의 마지막 생명


줄인 국민 연금에까지 축을 내고, 심지어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자연도 파괴하는


일에까지 덤벼 왔다.


성경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선을 행하는 자도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속에는 독사의 독이 가득하고, 그 입에서는 저


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선지자 요한은 요단강에서 유대인들에게 회개하라고 소리 쳤다.


오늘의 사태를 두고 하는 말 같지 않은가.


어느 누구하나 내 탓이라고 자복하는 사람이 없다.


선지자 세례 요한의 회개하라. 는 울부짖음을 이해할 것 같다.


다음 여행은 정조대왕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혼을 모신 수원 화성 행궁으로 정하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