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Healthcare)
스스로를 위해서도 자녀들을 위해서도 내 건강은 내가 돌봐야 한다.
건강한 거지가 병든 왕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행복의 첫째 조건으로 건강을 꼽는다.
이제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건강 돌봄 그 다음이다.
건강을 희생하면서 까지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
이다
오늘은 올겨울 날씨로는 가장 춥다.
40대만 해도 영하 15도를 넘지 않으면 눈 산행을 즐겼는데 지금은 찬
바람을 맞으면 어지러움을 느낀다.
그렇다고 방안에만 있으면 계속 군것질을 하게 되어 소화불량이 생긴다.
겨울 등산 장비를 갖추고 가까운 완주 종남산(610m)을 올라갈 것이다.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오르는 산이다.
종남산 정상에서 서방산(612m)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걸으면 5시간
이면 충분하다. 힘들 때면 두 산 사이에 있는 위봉사로 하산하면 3시간이
소요된다.
평생 몸 관리에 철저했던 사람도 일찍 생을 마감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 술, 담배를 하면서도 90을 넘겨 장수하는 사람도 있다. 건강한 사람
가운데는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 많다. 기질상 타고났
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고 후천적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내 경우는 후자다.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는 느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생명의 본질은 운동에 있다.”고 강조하면
서 유기체는 끊임 없이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심장의 확장과 수축을
통해 끊임없이 혈액순환 운동을 한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몸이 건강하고
튼튼하면 기분이 좋겠지만 병에 걸리면 짜증이 나고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자강불식(自强不息)이라는 고사성어처럼 스스로 마음을 굳세게 다지며 쉬
지 않고 운동을 하는 편이다. 인과응보(因果應報) 아니겠는가.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귤화북지'라는 말을 믿는다.
지인 가운데 부부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루에 만 보를 해낸다고 한다.
난 급한 상황이 아니면 일곱 정거장은 버스를 타지 않고 걷는다.
주 2회는 장거리 산행을 하고 산행이 없는 평일 저녁에는 근처 경로당에
설치된 운동기구를 이용, 한 시간 이상 헬스를 한다.
건강하지 못하면 위축될 것이고 기가 꺾여서 부와 명예를 갖고 있어도
즐겁지 못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강을 다른 일을 위해 희생하는 일은
어리석다. 겅강을 해치면서까지 운동이 아닌 다른 일로 괴로 할 이유가
있겠는가. 40부터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내
손으로 밥을 먹고 내 발로 화장실을 다녀야 한다. 내가 운동을 통해 내
건강을 스스로 챙겨야 하는 일이다.
돈은 빌려 쓸 수 있다지만 건강을 빌려 쓸 수는 없다.
대구 한 아파트에서 50대 아들이 치매를 앓고 있는 80대 아버지를
살해한 뒤 15츨 아파트에서 투신 묵숨을 끊었다. 가족이 가족을 살
해하는 ‘간병살인’이다. 가족 돌봄의 굴레에 갇힌 복지 사각지대가
만들어 낸 비극이다. “아바지와 함께 묻히고 싶다.”는 유서가 발견
되었다니 어찌 가슴이 멍멍해지지 않겠는가.
어느 엄마의 하루는 뇌병변 장애를 가진 아들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로 시작된다. 양손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아들은 혼자서는 밥도 못
먹는다. 그렇기에 엄마는 한나절의 자유조차 허락받지 못한다.
기저귀를 채우고 잠깐 볼일을 보라 나가는 게 전부다. 욕창을 막으
려고 체위를 바꾸는 중노동에 엄마의 몸은 이미 골병이 들었다.
이렇게 1급 장애를 40여 년간 돌보다 아들을 숨지게 한 엄마가 붙잡
혔다.
누구나 한 번쯤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
한 적이 있을 것이다. 고통을 없애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죽는 것이라
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세상이 힘들수록, 세상이 각박할수록 죽음으로
세상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죽도록 잘 살고
싶어서 차라리 죽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그만큼 살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