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한 뒤에 얻는 깨달음
소설가 헤밍웨이는 젊은 시절에 바닥까지 추락한 뒤에 얻은 깨달음을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에 남겼다. 그는“세상은 모든 사람을 깨부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부서졌던 바로 그 자리에서 한층 더 강해진다.”라고 썼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흔히 “카타바시스katabasis” 를 경험한다
카타바시스는 “아래로 내려가기 혹은 밑바닥으로 떨어지기”이다. 이렇게
그들은 실패의 쓴잔을 마시고 추락한다. 그리고 나서야 예전보다 훨씬 많은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세상으로 돌아온다.
오늘 날 우리 역시 때로 지옥 같은 그 밑바닥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냈었다.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 저지르고 파괴적이고 끔찍한 행동들을 예사롭게
저지르다가 마침내 카타바시스를 경험한다. 욕심이 크면 클수록 추락은 더
깊고 큰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든 증거가 명백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잘 못을 계속 부인한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기를 꺼린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 한다(요한3:20)
인생의 많은 의미 있는 ‘변화’들은 우리가 철저하게 파괴되는 순간들,
다시 말해서 자기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허상이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들에서 비롯된다.
당시 유럽에서 최고의 지식인으로 명예와 부를 다 가졌던 바울은 예수를
만나고 나서야 자신은 가짜로 살고 있었다고 고백하고 예수를 알리기에 전 생
애를 바친 사도가 되었다. 가짜는 진짜와 접속해야 가짜가 얼마나 허술하고
조잡한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당신도 변화를 원하는가.
변화는 ‘비판’에 귀를 기울이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설령 그 말들이 우리를 분노하게 하고 상처 주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렇다.
자 !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변화할 것인가?
아니면 부정할 것인가.
무릎을 꿇어봐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바닥을 친다는 것은 말만큼이나 고통스런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 말이 생각난다.
“나는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떨어지는 병 속에 있었다.”고
성취한 사람들에게는 ‘카타바시스’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무슨 일이든 포기해 버려서는 안 된다.
만일 그 싸움에서 지게 되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진짜 실패는 자기 원칙을 포기하는 것이다.
실패를 회피하려고 하는 사람은 ‘실패에 내재되어 있는 가치’를 결코 얻지
못한다.
자신이 추락했던 그 구덩이 옆에서 그 안을 들여다보며 피눈물 흘리면서
힘겹게 기어 나온 흔적들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