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산유국들이 오일달러를 긁어모으던 석유파동 때였다.
오일달러를 비축한 사우디아라비아는 선진국에 인프라 시공을 의뢰했다가 거절을 당했다.
열사(熱沙)의 땅에서 공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는 한국 기업이 공사를 맡아 달라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사업의 타당성과 수익성을 조사하기 위해 공무원들을 사우디아라비아에 급파했다.
귀국한 공무원들의 보고는 기대와 달리 아주 부정적이었다.
"각하, 곤란합니다. 낮에는 불볕더위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모
래와 자갈만 있고 나무 한 그루 없는 곳에서 공사를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물도 너무 부족합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도무지…."
경제개발을 위해 외화가 필요했던 박 대통령은 정주영 회장을 사우디아라비아에 보냈다.
상기된 얼굴로 돌아온 정 회장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호박이 넝쿨째 들어왔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공무원들은 불가능하다는데."
"공사에 필요한 모래와 자갈이 그 나라에는 지천에 널려 있어요.
모두 공짜로 쓸 수 있죠. 더운 낮에는 자고, 밤에 불을 켜고 작업하면 됩니다. 물은 외국에서 들여오면 되고요."
박 대통령은 건설 공사를 맡아 어마어마하게 외화를 벌어들인 정 회장의 노고를 크게 치하했다.
(생략)
동일한 상황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구약에도 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란 광야에 진을 치고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12명을 보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만 그 땅 백성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니까 우리는 메뚜기 같더라."
"그 땅은 심히 아름답고 젖과 꿀이 흐르고 그 땅 백성은 우리 밥이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하시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자."
40일간 가나안 땅을 정찰하고 돌아온 10명과 2명(여호수아와 갈렙)의 의견은 극과 극이었다. 10명의 그릇된 정세 판단의 폐해는 국론분열을 가져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0명의 말을 듣고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고,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한 장관을 뽑아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반역을 도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