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말은 잊을 수 없는 시기였다.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고 달러를 구걸하기 위해 온갖 것을 희생해야했던 암울한 겨울이었다.
주식시장이 성할 리 없었다.
국가 부도의 위기로 몰리던 1997년 12월에는 코스피지수가 300포인트대 초반까지 밀리며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
모든 종목들은 폭락을 거듭했고, 웬만한 중소형주는 매일 거래없이 ‘점 하한가’를 며칠씩 이어갔다.
신용으로 주식투자에 나섰던 투자자들은 당연히 깡통을 찼고 객장에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무거운 침묵이 짓눌렀다.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것으로 일은 끝나지 않았다.
2008년 여름에 내내 300포인트 아래서 증시는 기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가을로 들어서고 찬바람이 불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외국인들이 한국주식을 쓸어담기 시작하면서 주가는 거침없이 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10월에 300포인트 내외였던 코스피지수는 1999년초에는 650포인트까지 단번에 배 이상 급등했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바이코리아 펀드 열풍까지 겹치며 그 해 여름에는 대망의 1천포인트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기에 이르렀다.
불과 10개월만에 코스피지수는 300포인트에서 1천포인트까지 내달린 것이다.
이 때 본인과 지인들의 일주일에 한 번씩 한 정보회의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다.
“IMF를 겪었던 나라는 반드시 다시 어려움을 겪는다는데…주식시장이 다시 급락하면서 쌍바닥을 찍는다는데…”
섬뜩한 얘기였다. 다른 나라는 다 그래도 우리나라만은 아니기를 믿고 싶었다.
겨우 숨쉴 수준이 되었는데 다시 IMF때 수준으로 돌아간다면…생각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그 일은 우리에게도 어김없이 현실이 되었다.
2000년 봄부터 분위기가 이상하더니 수면 아래에 있던 대그룹들의 문제가 터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코스피지수는 그 해 여름에 다시 500포인트대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500포인트 내외의 암담한 흐름은 2001년 가을까지 거의 1년 이상 지속되며 주식투자자들,
바이코리아펀드 투자자들 모두를 절망하게 만든 것이다.
결국 IMF 전후 300포인트 내외의 어려움이, 2년만에 다시 한 번 몰아치며 쌍바닥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 또 그런 생각이 든다. 150년 역사의 리먼브러더스가 망하는 등 월가가 대혼란에 빠지며
다우지수가 6천포인트대 초반까지 폭락한 것은 사실상 IMF나 마찬가지 상황이다.
올 3월만해도 6천선 초반에서 암울하기 짝이 없던 다우지수가 이제 1만선에 접근하고 있다.
올 봄까지 들리던 우려의 목소리들도 모두 사라지고 경기 회복 기대감이 시장 전반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은 어려움이 모두 해소된걸까? 아직도 은행들은 계속 망하고 있는데…
부동산이나 신용카드 문제, 기업들의 어려움은 다 해결되고 이제 밝은 미래만 남은 걸까? 미래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역사의 반복을 생각한다면 낙관하기에는 많이 이르다.
7월부터 외국인들이 대형주들을 쓸어담기 시작했고,
일부 대형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 교체와 함께 국내기관도 대형주 절대 선호의 흐름이 극단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9월 하순부터 외국인들이 관망세로 돌아서자 대형주들이 추풍낙엽이다.
며칠 만에 코스피가 1,700포인트대 초반에서 1,600선 아래로 추락하고 있다.
이런 극단적인 대형주 선호현상과, 그 작은 후유증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다시 미국 경제의 어려움이 터져나오면서 다우지수가 급락하고,
이에 따라 외국인들이 우리시장에서 주식 매수를 않거나 매도에 나서면서 수급상 대형주가 폭락하는 때가 오지 않을까하는…
펀드 환매로 돈 마련에 급급한 뱁새(기관)가 여유로운 황새(외국인)을 너무 따라하고 있다.
뱁새의 다리는 황새의 그것에 비해 너무나 짧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