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율 방어가 성공할 수 없는 이유
  • 2009-11-02
정윤희

우리나라 정책당국은 시장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강력한 정책을 처방하면 시장은 언제든지 그리고 얼마든지 조종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이런 일은 외한시장에서 자주 벌어졌다. 특히 국제수지가 흑자일 경우, 그래서 환율이 줄기차게 떨어질 경우,


정부가 달러를 충분하게 사들이면 환율 하락은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아무리 강력한 정책을 펼치더라도 떨어질 환율은 시간이 지나면 떨어지곤 했던 것이 그동안의 경험이었다.

물론 환율방어 정책이 성공을 거둔 적은 있다.


특히 2000년과 2008년 등 두 차례는 정책이 시장을 이겨낸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도 있다.


2000년의 경우에는 정책당국이 무려 220억달러를 외환시장에서 사들임으로써 연초 1140원 수준이던 환율을 연말에는


1260원 대까지 끌어올렸다. 2008년의 경우에는 달러를 대규모로 사들이지 않고도 연초 940원대이던 환율을 11월 한 때


1500원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그럼 그 당시에는 환율방어 정책이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니다. 경제의 대표적인 건강성 지표 중 하나인 환율이 상승하자 우리 경제의 건강성에 대한 의문이 일어났고,


결국 각종 경제 위기설이 난무하며 불안감이 확산됐다. 그러자 미래에 달러가 필요한 사람들까지 수요를 현재로 이동시켰고,


이에 따라 가수요가 발생하자 환율은 폭등했다. 2000년에도 그랬고 2008년에도 그랬다.


정책이 직접 환율을 상승시킨 것이 아니라 외환시장의 불안 심리와 그에 따른 수요의 시간이동이 환율을 상승시킨 것이다.

그럼 그 결과라도 좋았을까? 아니다. 두 차례 모두 경기가 빠르게 하강했다.


2000년에는 1분기에 10%를 훌쩍 넘겼던 전기비 성장률이 4분기에는 -4%를 기록했고, 2008년에는 1분기까지는 4%를 넘었던


전기비 성장률이 꾸준히 떨어지다가 4분기에는 그 속도가 갑자기 빨라지며 무려 -18.8%를 기록했다.


환율을 상승시켰던 정책의 목적은 수출을 늘려서 경제를 살리자는 것이었는데, 경기는 오히려 급강하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환율정책은 참혹하게 실패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두 차례를 제외하고는 환율방어 정책은 환율 하락조차 막아내지 못했다.


특히 2002년과 2005년에는 정책당국이 각각 110억달러 이상을 외환시장에서 사들였으나 환율 하락을 막아내지 못했다.


2002년에는 연초 1300원대에서 연말에는 1200원까지 떨어졌고, 2005년에는 연초 1030원 대에서 1010원 대로 떨어졌다.


그 밖의 해에도 매년 30억~50억달러를 정책당국이 매년 사들였으나 환율은 줄기차게 떨어지기만 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4월 외환당국은 62억달러를 외환시장에서 사들였지만, 환율은 4월 초 1370원 대에서 월말에는 1282원으로 떨어졌다.


5월에는 한 달 동안에만 무려 143억달러를 사들였지만 환율은 1273원으로 떨어졌다.


그 뒤로도 외환당국은 환율방어를 위해 달러를 지속적으로 사들였지만, 9월말에는 환율이 1178원까지 떨어졌고


10월 초순부터는 1170원 선마저 무너졌다.

왜 이런 일이 자꾸 벌어졌을까? 달러를 시장에서 사들이면 환율은 오르는 것이 정상일 것 같은데 오히려 왜 떨어지기만 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들어보자. 강물이 너무 많이 흐른다고 둑을 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둑에 물이 찰 때까지는 강물이 일시적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위에서 흘러온 수량만큼 다시 흐르게 된다.


그 밑에 또 둑을 쌓더라도 강물이 그 둑을 채우는 동안만 일시적으로 줄어들 뿐 곧 수량은 다시 많아진다.


자칫 그 둑들이 무너지면 강이 범람하면서 더 큰 피해를 낳기도 한다.


설령 이런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둑을 쌓고 관리하는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기 마련이다.
 
환율방어 정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달러를 사들이기 위해서는 국고채를 발행해야 하고, 발행한 국고채에 대해서는


이자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국고채 발행에 따른 통화팽창을 막기 위해서는 통안증권을 발행해야 하고,


발행한 통안증권에 대해서도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장차 환율이 더 떨어질 경우에는(그럴 수밖에 없다) 비쌀 때 사들인 달러는 환차손을 입어야 한다.


정부만 환차손을 입는 것이다 아니다. 은행 등의 금융회사들과 수출기업들과 개인이 보유 중인 외환 역시 환차손을 입어야 한다.


참고로 거주자 외화예금은 2009년 7월말 현재 313억달러에 달한다.
 
정책당국은 장차 경상수지 흑자가 줄어들 것이므로 환율은 차츰 안정될 것이며, 환차손도 크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이것은 난망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판단이다. 당분간 경상수지 흑자는 매월 20억달러 이상에 이를 것이 확실하고,


이 규모의 흑자는 빨라도 2010년 상반기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2010년에도 경상수지 흑자는 200억달러 내외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2006년과 2007년에는 경상수지 흑자가 각각 54억달러와 59억달러에 불과했지만,


환율은 계속 하락해 900원을 위협받기도 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환율방어에 따른 손해는 환차손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환율이 안정되면 물가가 안정되고, 물가가 안정되면 같은 소득으로 더 많은 소


비를 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경기가 더 빠르게 상승할 수 있는데 또한 물가가 안정되면 국제경쟁력은 물론이고 성장잠재력까지


살아날 수 있고, 이런 효과들까지 정책당국의 환율방어가 가로막아버린다.
 
결론적으로 지속적이고 무모한 환율방어는 불필요할 뿐 아니라 대규모의 국가적 손실을 남기면서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물론 환율이 짧은 기간에 너무 큰 폭으로 하락해 경제 불안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특수한 경우에는 단기적인 대응이


필수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급격한 환율 하락이 아니라면 시장의 기능을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시장의 왜곡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