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미국 라스베가스에 잠시 들른 적이 있었다. 최고급 호텔의 숙박비가 비교적 저렴해서 나는 깜짝 놀랐다.
호텔 식당의 요리도 최고급이고 맛있었지만 값은 아주 쌌다. 각 호텔마다 매일 밤 펼치는 다양한 공연도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었지만 입장료는 전혀 아깝지 않았다.
모든 호텔이 카지노를 겸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객들은 도박을 통해서 그 비용을 충분히 지불했고,
호텔은 그 수입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호텔은 저렴한 숙박비와 음식값과 공연료를 미끼로
도박장에서 돈을 잃어줄 고객을 유인했다.
함께 여행을 했던 동료 중에 경제적으로 제법 여유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수는 없다`면서 내 소매를 끌어 슬롯머신으로 안내했다.
이곳은 `도박이 아니라 단순한 오락을 목적으로 사람들이 흔히 찾는다`고 그는 귀띔을 해줬다.
입구에는 `회수율 97%(?)`라는 표지가 걸려 있었고 `누적 상금 수백만 달러`라는 전광판이 여기저기에서 반짝였다.
언제 바꿨는지 그는 10센트 코인으로 가득 찬 바구니를 하나 내게 건네줬다. 이 정도라면 밤새껏 즐겨도 동전이 남을 것 같았다.
그 사이에 혹시 재수가 좋으면 대박이 날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새벽 두 시쯤에 바구니가 텅 비었다. 허탈하게 호텔방으로 올라와 계산기를 두들겨봤다.
10센트 코인 하나씩만 투입하더라도 100여 차례가 지나면 10%도 남지 않는 결과가 나왔다.
지금 우리 주식시장에는 이런 도박에 빠져든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거래하는 사람이 흔하다. 수십 차례씩 거래하는 사람도 제법 많다.
거래세와 거래수수료가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싸졌다고 하지만, 거래가 반복적으로 이뤄지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만약 당신이 이런 투자자라면 지금 당장 계산기를 들고 두들겨 보라. (1-0.06)을 반복해서 곱해보면 그 답이 나온다.
하루에 한 차례만 거래하더라도 1년이 지난 뒤에는 투자원금을 거의 모두 거래비용으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주식투자자들은 거의 모두 이처럼 돈을 잃을 도박만 하고 있는 셈이다. 왜 이런 좋지 못한 투자풍토가 조성되었을까?
주식시장 주변에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수없이 떠돈다.
누구는 몇 백만원으로 수십억원을 벌었다거나 다른 누구는 수백억 원을 벌었다는 말을 흔하게 들을 수 있다.
이런 얘기들은 주식투자자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스스로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나다고 믿는 사람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되물어보자. 주식투자로 그렇게 큰돈을 번 사람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말이다.
내가 아는 한, 일시적으로 그렇게 큰 돈을 벌었던 사람 중에서 10년 이상을 투자자로 남아있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좀처럼 찾아내기 어렵다. 거의 모든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수백만원으로 수십억 혹은 수백억원을 벌기 위해서는 한 번의 거래에 올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무리 운이 좋은 사람이라도, 그리고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매번 수익을 올릴 수는 없다.
한 번쯤은 운이 나쁠 수도 있고, 한 번쯤은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한번이 그동안 벌었던 돈을 몽땅 잃게 하는 것이다.
내가 만나봤던 주식투자 고수(?)들은 거의 모두 그랬다.
한 때는 대단한 영화를 누렸지만, 지금은 종적조차 찾기가 어려웠다.
기껏해야 주식시장에서 투자가 아니라 말이나 글을 팔아서 연명해야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제발 이런 전설은 이제 우리 주식시장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것은 모든 주식 투자자를 거지로 만드는 전설일 따름이다.
이런 의미에서 증권회사들이나 증권 관련 언론사들이 모의 투자대회를 여는 것도 이제는 제발 그만 멈춰야 한다.
짧은 기간에 수백 퍼센트 혹은 수천 퍼센트의 수익률을 올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말이다.
모의 투자대회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실전 투자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뒀다는 얘기를 나는 아직 듣지 못했다.
일시적으로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모두 실패했다.
그들은 대부분 가족이나 이웃에게까지 큰 손해를 끼쳤을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주식투자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투자원칙을 흔히 제시하곤 한다.
즉, 절대로 증권회사 객장에 나가지 말고, 인터넷 시세판도 보지 말라는 것이다.
시세판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이 찍은 종목만 하락장에서도 오르거나 상승장에서는 더 많이 오른다고 믿게 된다.
상승장에서 떨어지거나 하락장에서 더 많이 떨어진 종목은 잊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주 거래를 하게 되고, 결국은 거래비용으로 투자원금을 몽땅 까먹기 마련이다.
개인으로서는 역시 적립식 투자가 가장 현명한 선택인 셈이다.
또 하나 명심할 점이 있다. 지나친 욕심은 금물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주식투자와 관련한 회사에 근무하는 지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컨설팅을 받은 적이 있다.
`자신이 거둔 수익률보다 훨씬 낮은 실적을 기록한 사람이 훨씬 더 많은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인맥이 좋은 것 같지도 않다.
도대체 그 이유를 모르겠다.` 나는 그에게 `연평균 수익률 목표를 고객들에게 얼마로 제시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25%라고 답했다.
내가 제시한 해답은 간단했다. `큰 부자들에게는 15%의 수익률도 높은 편이다. 그들에게 25%는 도박에 해당한다.
그만큼 돈을 잃을 확률도 높다고 여긴다.` 그는 `자신의 경쟁자도 사실은 15%의 수익률을 목표로 내세운다`고 내게 말했다.
세상이 이렇다. 큰 부자들은 좀처럼 허황된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다. 실현 가능한 목표만을 추구한다.
높은 수익률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경험을 통해서 이미 절감했을 것이다.
수많은 실패가 그들에게 그런 가르침을 주었고, 그 가르침을 통해서 그들은 큰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사실, 한 번 돈을 잃으면 좀처럼 회복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보자. 1000만원을 투자하여 25%를 벌었다면 1250만 원이다.
그러나 25%를 잃었다면 투자원금은 750만원으로 줄어들고, 이것으로 1000만을 회복하려면 수익률이 33%를 넘어야 한다.
1250만 원을 벌려면 66%의 수익률을 올려야 한다.
이런 사실은 주식투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잃는 일은 벌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투자에 앞서서 그 위험을 먼저 살피는 일은 이처럼 매우 중요하다.
만약 투자수익률의 목표를 15%로 낮춘다면 위험은 그만큼 줄어든다. 그리고 수익률 15%는 그렇게 무리한 목표는 아니다.
우리 경제의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함께 감안하면 15%의 수익률은 얼마든지 달성 가능하다.
경제란 잠시 주춤거리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성장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간 15%의 수익률만으로도 장기적으로는 대단한 실적을 남긴다.
만약 10년 동안 그런 수익률을 올린다면 내 투자자산은 네 배로 증가할 것이고, 20년 동안 그런 수익률을 올린다면
내 투자자산은 16배로 증가할 것이다.
흔히 `남들이 팔 때 사고, 남들이 살 때 팔면 주식투자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사람들이 주식을 팔기에 바쁠 때에는 주식시장은 바닥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남들이 주식을 사기에 바쁠 때에는
주식시장은 천장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자 시점을 잡는 일은 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바닥이라고 판단하여 샀는데 더 떨어지기도 하고, 천장이라고 판단하여 팔았는데 더 오르기도 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바닥이 여러 차례 형성되었지만 자꾸만 추가로 더 떨어졌었고,
미국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까지 25년 동안 천장이 여러 차례 형성되었지만 자꾸만 추가로 상승한 바 있었다.
그렇다면 예외가 없는 원칙은 없을까? 있다. 남들이 단기 투자를 하는 분야에는 장기 투자를 하고,
남들이 장기 투자를 하는 분야에는 단기 투자를 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이 문제는 다음 기회에 살펴보기로 한다.
[이데일리 최용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