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용의 멋
  • 2010-11-02
성수클럽

공자의 논어 학이편에 지호락(지호락)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즉 아는자는 좋아하는자 보다 못하고 좋아하는자는 즐기는 자보다 못하다 하여
아는자를 가장 아랫자리에 두고 즐기는 자를 제일 높은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가령 술병을 보고 이 술이 무슨 술이며 몇년산이고 값이 얼마쯤 나간다는것을
아는것과 단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 술맛을 보고 병채들이 마신다면
그 결과는 어찌 되겠습니까
이태백은 술을 알고 좋아하는 단계를 넘어 달과 나와 술을 혼연일치시켜
술의 맛과멋을 즐길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옵션을 배워 안다고 그맛에 취해 겁없이 덤벼 든다면 그 결과는
곧 바로 참담한 현실의 벽에 부딪쳐 패가망신할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옵션을 즐기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아주 작은 수익에도 자족할 줄 알며 마치 음악에 맞추어 흥겹게 춤을 추는 사람같아야 합니다. 그래야 시장의 흐름에 따를 수 있어 수익을 내고 그래야 자신을 삶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습니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니다. 오늘이 끝이 아닙니다.
조급하게 덤벼들다가 투자금이 바닥나 중도 하차하는 우를 범하지 마십시요.
옵션을 알게 하는것은 내 책임이지만 좋아하고 즐기는것은 여러분 몫입니다.
아는자는 좋아하는 자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보다 못하다는
공자의 가르침에 다같이 귀 기울여 봅시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론에 대한 견해를 생각해 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목표는 행복을 실현하는데 있다고 보고
행복을 실현시킬 중요한 덕목으로 중용을 강조했습니다.
즉 중용이란 행위의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로
무모하게 만용을 부리거나 소심하여 비겁하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일시적, 우연적으로 한 행동이 중용에 맞게 행동했다고 해서
항시 그렇게 될 수는 없지요, 그러므로 시종일관 중용에 맞는 행위를
거듭함으로써 행위가 습관화 되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인간의 이성적 작용이
항상 뒤따라야 만용과 욕심을 억제시키고 비겁하게 소심한 행동에 용기를 주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한마리의 제비가 왔다고 봄이 되는게 아니며, 한두번의 중용만으로는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피력합니다.


우리가 시장에서 수익을 내는게 목표라면 그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하는 중용 즉 항상 인간 이성의 힘으로 지나친 욕망을
조절 할 줄 아는 행위가 습관화 되어야 한다는 주문에 귀 기울여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