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스토리
  • 2008-03-07
파란하늘
최근에 영화를 하나 볼 기회가 있었는데 꽤나 오래된 영화였다.

문광부 장관을 엮임했던 이창동감독이 만들고,

설경구와 문소리가 주연한 '오아시스'라는 영화였다.

첫장면에 벽에 걸린 오아시스 그림에

나뭇가지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별관심없이 영화를 보는데,

아주 심한 뇌상마비 걸린 '공주'(문소리 분)가 나오고,

교도소 출소한 좀 한심하게 보이는 '종두'(설경구 분)라는 인물이 나와

뇌성마비 환자와 인생 안풀리는 건달의 사랑을 그린

그저 그렇고 그런 영화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종두는 전과 3범으로 마지막 전과는

교통사고를 낸 형대신 감방살이를 한 것이었다.

종두는 출소하여 형집에 일종의 더부살이를 하는데,

'공주'는 피해자 가족 중 한 명이다.

피해자 가족을 찾아간 종두는 혼자 집에 있는 뇌성마비 환자

'공주'를 이쁘다며 겁탈한다.

이것을 계기로 두 사람의 연애가 시작되는데,

종두는 제법 '공주'에게 정성을 다한다.

이야기도 좀 지루하고, 스토리가 뻔하게 흘러가는 듯 해

리모콘을 손에 쥐고 꺼버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중증의 뇌성마비 환자를 도대체 어떻게 사랑한다는 건지

그리고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게 할 수 있을지,

영화감독에 대한 의문 때문에 차마 비디오를 꺼버리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공주'와 '종두'가 옷을 벗고 섹스를 하고 있는데

'공주'의 오빠, 즉 교통사고 피해자 가족이 찾아왔다가

두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결국 종두는 '공주'를 강간한 혐의로 경찰에 잡혀간다.

경찰서 유치장으로 목사와 종두의 가족이 찾아오고

함께 기도할 수 있도록 목사가 종두의 수갑을 풀어줄 것을

경찰에게 요구하자 경찰은 종두의 손에서 수갑을 풀어준다.

그러자 종두는 기도하는 척 하다가 목사가 기도 중에 한

'불쌍한 어린 양'이란 말을 되뇌이며 경찰서를 탈출하고

경찰은 종두를 추격한다.

뭐 여기까지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너무나 뻔하디 뻔한 스토리다.

그런데 경찰서에서 도망친 종두는 톱을 가지고

어느 나무 위로 올라가 나무가지를 자른다.

나무 아래서는 경찰들이 내려오라고 달래고 얼르고...

미친듯이 종두는 나무가지를 자른다.

그 나무가지는 다름 아닌 '공주'의 방에 걸린

'오아시스' 그림에 어른거리던 그 나뭇가지였다.

집에만 쳐박혀 있을 수밖에 없는 '공주'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밤이면 어른거리는 나뭇가지 그림자였고

종두는 그 공포가 얼마나 크며, 밤마다 흔들리는 나무가지 그림자를 보며

기나긴 공포의 시간을 헤쳐나가야 할 '공주'의 시간이

목사의 기도 중 '불쌍한 어린양'이라는 말로 인해 절절히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종두는 미친 듯이 나무가지를 자르고,

경찰들은 아래에서 내려오라고 고함치는 이상한 풍경이 펼쳐진다.

나무가지를 자르는 장면에서 영화는

마치 커다란 종소리가 울리듯이 울림을 일으키며

평이한 스토리를 입체적으로 만들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의 심연에 흐르는 물줄기에 이르도록 만든다.

사람들의 사소한 버릇 하나, 작은 물건 하나,

별의미가 없는 듯한 조그만 소리를 통하여

세상을 해석하는 것은 작가의 몫이지만,

그것에 공감하고 그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독자의 관객의 몫이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지루하고 따분한 듯한 책, 별 인생의 도움이 안 되는 듯한 책,

웬만한 책이구나 하는 그러한 책에서

혹시 '오아시스'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어느 날 달빛에 어른거리는 나무가지 그림자가

나를 구원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다음주에도 성공투자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