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멸의 이순신
  • 2008-11-19
장성수







 예전에는 외적으로부터 조선을 지키기 위해서 싸웠다면 ,


지금은 푸른 집의 주인 한 사람을 위해서 초라한 철옹성 위에 버티고 섰다.


이순신은 죽어 세월이 지나서도 지키는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국사라는 교과를 배워온 사람이라면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조선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을 언급하면 으례 충무공이 언급되고 <난중일기>가 따라 다니게 마련이다. 그


런데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는 한 번 접해보기가 힘든 것이 <난중일기>다.


 오로지 국사 주관식 문제 정답으로나 외워두었을 법한 단어이다.


그렇게 기억 속으로 사라져가던 <난중일기>를 수년을 통하여 이순신의 숨결을 느끼고있다 세간에 나도는 이미지와 솔직한 일기의 문장 속에서 낮설은 이순신을 대면한다.


글을 읽는 사람으로 즐거운 경험이다.


 


하나 , 이순신의 감성적인 부분을 기대하셨다면 과감히 말하건데


 다른 책 이순신이 주인공인 다른 소설들 -


 <불멸의 이순신> <칼의 노래> - 을 읽어야 한다. <


난중일기>는 전쟁 중에 장수로서 기록해야할 일들을 간략하게 적어둔 책이다.  


그만큼 감정은 절제되어 있다. 고단한 전장에서 하루를 정리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둘 , 전쟁 중이었지만 열로하신 어머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차서


보름이 멀다하고 어머니께 안부를 물어 편안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


안절부절해하며 늙으신 어머니의 건강을 챙긴다. 글의 중간 중간에 '어머님이 평안하시다는 말을 들으니 참으로 다행스럽다'는 의미의 글들이 언급되는데


열마디의 수사보다 한 마디의 강건한 말이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할 때가 있다.


 


셋 , 무쇠팔 무쇠다리를 가졌을 것 같은 충무공의 이미지는 희석되고


인간 이순신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인간 이순신은 골골거리는 장수다.


많은 날 몸이 좋지 않다는 글들이 보인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어지간히 죽을 정도가


아니면 활 쏘기를 잊지 않았다. 생활이 훈련인 사람이라고 해야하나 . 자신의 골골거리는 육체를 강건한 정신으로 버텨낸 사람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른다.


 


넷 , 건조한 일상의 나열뿐이었던 그의 일기에도 슬픔이 베어나오는 구절이 있는데


한 군데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이고 한 군데는 아들 면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다.


 


아들 면이 죽었을 때 이렇게 쓰고 있다.


"면이 적과 싸우다 죽었음을 알고 ,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어질지 못하는가?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한데 ,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어쩌다 이처럼 이치에 어긋났는가?


천지가 감감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 슬프다. 내 아들아 !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영리하기가 보통을 넘어섰기에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게 하지 않은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화가 내 몸에 미친 것이냐!


내 이제세상에서 누구에게 의지할 것이냐! 너를 따라 죽어서 지하에서 같이 지내고 같이 울고 싶지만 네 형 , 네 누이 , 네 어머니가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아직은 참고 목숨을 이을 수빡에 없구나! 마음은 죽고 껍데기만 남은 채 울부짖을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한 해를 지내는 것 같구나."


 


<난중일기>는 개인의 일기라는 기록적 의미를 넘어서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도 있을 것 -

것이라고 한 것은 내가 역사학에 무지하기에 단순추측을 했기 때문이다. -  같다.

 <난중일기>가 전쟁의 최 전선에서의 기록이라면 우리는 <임진왜란>을 기록한

또 다른 책 한 권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임금의 행렬을 따라가면서 전쟁의 비참함을 문장에 담아낸 <징비록>이

그것인데 이 두 권을 같이 읽으면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의 한 부분을 확인하  수 있다.


다음은 발췌한내용입니다


중학교 시절 음악 시간에 배웠던 충무공의 노래 가사다. 일생을 오직 한 길 정의로만 살아오신 분, 민족의 태양, 역사의 면류관인 충무공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우리 생각 속의 이순신은 어떤 모습일까? 민족의 태양이나 역사의 면류관 정도의 휘황한 모습은 아니더라도 임진왜란의 국난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이란 생각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박천홍은 <인간 이순신 평전>에서 신비화, 우상화된 이순신의 허상을 벗기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랑하고 고뇌하고 슬퍼했던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70년대 학교에서 빌려 읽었던 책에 대한 기억














▲ <인간 이순신 평전>
ⓒ 북하우스
이 책을 읽으면서 70년대 초등학교 시절 읽었던 책 두 권이 떠올랐다. 살아 있던 '박정희 대통령 전기'와, 임진왜란 때 장렬히 전사한 '충무공 이순신' 만화였다.

'박정희 전기'에서는 이미 아들과 딸이 많던 어머니가 뱃속의 아이를 지우기 위해 무진 애를 쓰는데 그 방법 중의 하나로 장독대에서 간장을 바가지로 퍼 마시는 대목이 기억난다. 마침 그 무렵 잔치가 있던 이웃집에서 상 위에 놓인 간장 종지를 수정과로 잘못 알고 단숨에 마셔버린 쓰라린 기억이 있어 그 대목을 읽으며 몸서리를 쳤던 기억도 난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태어난 사람이 박정희였다고 한다.

'충무공 이순신' 만화에서는 마지막 전투 장면이 기억난다. 적의 총탄을 맞고 쓰러진 이순신은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며 쓰러졌고, 장군과 비슷하게 생긴 조카가 장군의 투구와 갑옷을 바꾸어 입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지휘해서 왜군을 모두 섬멸시켰다는 대목이다.

교과서 말고는 달리 읽을 책이 흔치 않던 시절에 읽은 이 책들은 내게 꽤나 강한 인상을 남겼다. 위인들은 날 때도 죽을 때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들 두 인물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걸 <인간 이순신 평전>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기념비(한산대첩기념비)의 내력을 보면 이것의 정체를 알 수 있다. 이 기념비는 1978년부터 1979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국비 1억 5천 5백만 원이 들어갔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거액이었다. 높이 20미터의 기념비에 새겨진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다. 기념비의 표석에는 "1979년 10월 비면제자(碑面題者) 대통령 박정희"라고 쓰여 있다. 김재규가 쏜 총탄에 맞아 사망하기 며칠 전이다. 박정희가 최후로 남긴 기념비인지도 모른다. 표석에는 이런 문구도 새겨져 있다.

이 해전(한산해전)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자랑이므로 박정희 대통령이 특별하신 분부를 내려 만인이 바라보는 한산섬 높은 언덕 위에 슬기의 증언탑을 세우게 한 것이다.

한산섬 앞바다는 민족의 마음의 고향
창파를 내다보면 눈부신 승리의 역사
오늘도 혈관 속에서 힘이 절로 솟는다.(8쪽)


독재자에 의해 관제 영웅으로 되살아나는 이순신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민족의 태양, 조국의 면류관의 짐을 벗은 이순신

하지만 박천홍이 <인간 이순신 평전>에서 되살린 이순신은 이러한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관제 이데올로기에 의해 성역화, 신격화된 이순신이 아닌 우리와 똑같은 감정을 가진 따뜻한 인간의 모습으로 복원하고 있다.

어깨에 박힌 총알을 마취도 없이 칼로 빼는데 조금도 찡그리지 않았다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순신은 그 상처로 많은 고통을 당했다. 유성룡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순신의 고통스런 심경을 엿볼 수 있다.

..."어깨뼈를 깊이 상한 데다 언제나 갑옷을 입고 있어서 상한 구멍이 헐어 늘 진물이 흐릅니다. 밤낮없이 뽕나무 잿물이나 바닷물로 씻지만 아직 쾌차하지 못해 민망합니다."(59~63쪽)

원균과 이순신의 관계도 원균에 의한 일방적 모함이 아닌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전쟁 과정에서 공을 다투던 두 장수가 그로 인한 시기와 반목의 정도를 넘어서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순신과 원균의 불화는 심지어 해상작전에 지장을 초래할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6월 5일과 10일 원균이 이순신에게 웅천의 적을 치러 가자고 제안했다. 이순신은 그것을 원균의 흉계로 치고 따르지 않았다. 그만큼 이순신은 원균을 신뢰하지 않았다.

11일에는 사태가 역전되었다. 이순신은 원균에게 적을 토벌하자며 공문을 만들어 보냈다. 원균은 술에 취해 정신이 없다며 회답하지 않았다. 피장파장인 셈이었다. 그 무렵 원균은 따로 조정에 장계를 올렸다. 이순신과 마찬가지로 수륙 합동작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115쪽)


셋째 아들 면이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적의 칼날에 죽었을 때 여러 장수들의 위문을 제대로 맞지 못할 정도로 슬퍼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죽은 아들을 위해 통곡하고 싶은 나머지 소금 굽는 강막지의 집으로 들어간 이순신의 모습에서 고독한 영웅이 아닌 아들 잃은 아비의 비통한 심정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이 책이 주는 즐거움은 우리와 똑같은 피와 눈물을 가진 인간 이순신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민족의 태양과 조국의 면류관의 무거운 짐을 벗고, 주어진 현실 속에서 치열하고 처절하게 살다간 한 인간의 생애에서 또 다른 감동을 느껴볼 수 있다.

인간 이순신의 모습 말고도 이 책의 읽는 즐거움은 또 있다. 임진왜란을 둘러싼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피난길에 요동으로 망명할 뜻을 수시로 내비치던 선조, 이순신의 공을 인정하는데 냉정하기 이를 데 없었던 선조의 본심, 왜군 대신 어부의 머리를 잘라 왜군 머리로 위장해서 공을 세우려했던 비정한 수군, 노량해전을 둘러싼 조선과 명의 전혀 다른 서술 등 책 곳곳에서 전쟁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